인덕천황릉 전방후원릉 전방후원분 仁徳天皇陵古墳(인덕천황릉고분) 닌토쿠 덴노릉, 개로왕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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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 안숙(安宿) 배타고 온 보트 비플이, 섬나라에 도착해서 이제 잘자리가 편안히 생겼구나
https://guessinggame.tistory.com/entry/오사카-닌토쿠-덴노릉인덕천황릉-정보-및-내부

닌토쿠 덴노릉은 일본의 역사적인 고분으로,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은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5세기 중엽에 죽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닌토쿠 전황릉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자지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쿠푸왕 피라미드와 중국의 진시황릉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가노 우마쿠는 도래인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 주장에 펄펄 뛴다.
소가노 우마쿠의 고조할아버지가 소가 마치인데
소가가 성이고, 마치가 이름이 된다.
개로왕이 죽을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피난간 사람들이 백제신하 목협만치일 가능성이 높다. 동일인일 가능성
소가마치 집안이 아스카 시대의 실질적인 사실상 실권자인데
천황가의 며느리들은 전부 소가씨 집안의 여자, 외척이 됩니다.
우리가 갖는 외척과 일본이 다른데
일본의 결혼풍습으로 당시, 방처혼이라고 결혼 후 부부가 별거하다가
처가집을 방문하는 스타일인데,
아스카 시대에 결혼한 여자는 애도 집에서 키우는데
즉 천황의 아들들이 모두 소가씨 집안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히노쿠마 신사가, 아스카에 있는 신사인데
아야씨:백제 아지사주의 후손 대장장이, 토목, 금속기술, 경호등의 전문가
즉 도래인이 문화, 기술을 일본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miyachijo/223513915947
일본서기에 보면 인덕천황의 별칭이 오사사키였다.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오사카의 명칭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출처] 일본의 진시황릉-인덕천황릉은 개로대왕의 기념비|작성자 조 미야

https://blog.naver.com/joonho1202/221223909570
마지 막으로 그러면, 닌토쿠왕은 누구일까? 두 번째로 큰 무덤인 오진왕릉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한 의견은 오진왕이 한성백제의 마지막 왕인 개로왕의 들째아들인 곤지 (그는 백제의 좌현왕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곤지는 개로왕의 아우로도 등장한다. 개로왕이 곤지에게 왜로 건너갈 것을 명했다. 곤지는 왜로 건너와서 터전을 닦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때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 박사가 건너왔다. 미지의 세계에 문명을 수혈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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