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역사 여행해보기 일본 근현대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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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역사 여행해보기
존경하는 선킴 선생님의 탐방기를 베이스로 해서 작성했습니다.
[인천] 썬킴과 함께 떠나는 한국 근현대사 탐방기 "인천편" (cnutour.com)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한국 근대문학관
인천 개항박물관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짜장면박물관
삼국지 벽화거리
제물포구락부
홍예문
답동성당
신포국제시장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한반도 해운업을 장악하라, 구 일본 우선(郵船) 주식회사 인천지점<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에 위치한 구 일본 우선 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다. 상량판을 통해 확인된 건축 연대가 1888년이므로 고종 25년(메이지 21년)에 해당한다. 조선이 개항한 1876년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에 따라 부산, 원산에 이어 제물포가 항구를 연 1883년으로부터 불과 5년 뒤다. 종교시설도 아니고 관공서도 아닌 민간 기업 건물이 1세기도 훌쩍 넘겨 건재하다는 점이 이채롭다.

한국 근대문학관
인천은 개항도시입니다. 1883년 개항 이후 서구의 근대문화가 인천을 통해 집중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인천은 항구도시이기도 합니다. 인천항을 통해 국내외의 물산이 나가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인천 개항장 주변에는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낸 건물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이런 창고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조성되었습니다.

인천 개항박물관
근현대사 박물관 협력망 안내 - 인천개항박물관(근대건축전시관) (much.go.kr)
인천개항 역사의 중심지에 위치한 인천개항박물관은 개항기 인천으로 유입된 근대문화의 다양한 측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0년 개관한 인천개항박물관은 인천 개항장의 대표적 근대유산인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건물에 자리하여 명실공히 인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명소가 되었습니다.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은 1883년 설정된 일본조계와 1884년 마련된 청국조계와의 경계로 중앙에 돌계단, 양쪽에 조경 공간을 두었습니다. 좌측은 청국 조계로 중국식 건물들이 보이고, 우측은 일본조계지역으로 일본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13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계단을 중심으로 확연하게 다른 청국과 일본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짜장면박물관
인천의 개항 이후 중국인의 청국조계지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 일대에 중국요리집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근 인천항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중국요리집을 자주 찾게 되면서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개발하게 됩니다. 중국된장인 미옌장을 비벼 먹는 작장면과 달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적당히 유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곧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짜장면은 대표적인 한국음식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삼국지 벽화거리

제물포구락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구)제물포구락부 (舊)濟物浦俱樂部)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 검색 (heritage.go.kr)
인천에 있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인 제물포 구락부의 사교장으로 쓰기 위해 광무 5년(1901)에 지은 것이다. 1913년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인천연합회 소속의 정방각으로 불리다가, 1934년 일본부인회, 광복직후에는 미군 장교 클럽, 1947년부터는 대한부인회 인천지회가 각각 활용하였으며, 1952년 시의회, 교육청, 박물관이 함께 사용하다가, 1953년 의회와 교육청이 이전한 후 1990년 인천시립박물관도 이전하였다. 2007년 6월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구)제물포구락부의 모습을 복원하여 스토리텔링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2층 벽돌집으로 근대 개항 이후 복잡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호화스러운 건물이다.
구락부 = club

홍예문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홍예문 (虹霓門)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 종목별 검색 (heritage.go.kr)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다.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石門)으로, 위치는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3가 20이며, 면적은 1,952.6㎡이다.
건설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이 홍예문(을 뚫었는데 일본인들은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답동성당
사적 인천 답동성당 (仁川 沓洞聖堂) | 국가문화유산포털 | 우리지역 문화재 (heritage.go.kr)
신부 홍요셉이 세운 벽돌 구조의 성당으로 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다. 1937년 두차례에 걸친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성당의 평면은 십자형이며, 붉은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하였으나 중요한 곳에는 화강석재를 의장적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의 중앙과 양 옆으로 출입구가 나있고, 가운데 출입구 위로 장미꽃 모양의 창을 설치했다. 건물 중앙에 큰 탑을 두고 경사진 지붕을 날개로 단 다음, 끝부분에 장식적인 작은 탑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리나라 교회건물의 보편적 형식

신포국제시장
신포국제시장은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개항이 시작되기 전에는 ‘터진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개항 이후에 ‘새로운 항구’를 의미하는 ‘신포’라는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2010년에는 ‘신포시장’에서 ‘신포국제시장’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시장 내 쉼터에 조성된 푸성귀 시장 조형물을 보면 19세기 말 과거의 시장 풍경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푸성귀전 안에는 20여개의 채소가게가있었는데주로중국인 화농들이 일본인 고객에게 양파, 당근, 토마토, 피망 등의 새로운 채소를 팔았습니다.푸성귀전 외에도 어시장에서 기존의 상인들과 일본인 상인들이 경쟁을 벌이며 점차 거대한 시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인천의 대표 전통시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외국인이 가기 좋은 전통시장으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모두 인정 받은 시장입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qaXH09KPTHRLW3aPFFTVnA60sZr2Xtw&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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