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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 영웅전 한니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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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둡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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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해전

 

 

키몬

 

밀티아데스 = 마라톤전투의 영웅 ' 벌금 때문에 옥사

 

키몬은 아리스테이데스의 도움을  ㅂ받았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경쟁자였고, 쫓겨나기도 했던 그는 균형을 위해 키몬을 후원했다.

 

장군이던 키몬은 아리스테이데스와 함께   ㄱ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검소하고 용맹한 스파르타를 자주 옹호하던 키몬은 패각 재판으로 아테네로부터 추방된다.

 

이후 복귀한 키몬은 이집트와 키프로스를 공격하려 함선 200척을 준비했다.

 

도중에 페르시아를 무찌르고 근처에 있는 모든 도시를 탈환하여 이집트를 압박했다.

 

그러다 키프로스 섬에 함대를 정박하던 중 절명했다.

"내가 죽은 걸 적이 모르게 하시오. 그리고 모두 어서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이게 그의 유언

 

//

 

데모스테네스

 

bc384 - bc 322

 

7살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재산은 제법되었으나, 재산관리인이 가로채는 바람에 망했다.

 

어릴 적 칼리스트라투스의 재판(변호하는)을 보게된다.  ㅇ이때 반하여 웅변가가 될 결심을 하게 된다.

 

이사이우스의 제가가 되어 본격적으로 웅변을  공부한다.

 

재산을 가로챘던 후견인과 법정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훌륭한 웅변술로 재산을 되찾게 된다.

 

배우 사티로스에게 발성과 제스쳐를 배우고, 갖은 노력으로 훌륭한 웅변가가 된다.

 

 

아테네 북쪽의 마케도니아는 필리포스 왕이 독재를 펼치고 강력한 나라게 되었는데,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을 이간질해서 서로 싸우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필리포스는 아테네의 데모스테네스를 주의할 것을 명령했다.

 

아테네는 사신을 보내 마케도니아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데모스테네스는 마케도니아를 비난하고 단결해서 마케도니아를 물리칠 것을 설득했다.

 

에우보이아, 아카이아, 코린트, 메가라, 레우카디아, 코르키라이 등의 군대를 끌어들여 군대를 조직한 데모스테네스는, 테베를 연합군에 끌어들이도록 노력했다.

테베는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어 아테네에 대항하고 있었지만, 데모스테네스의 웅변에 아테네와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총사령관이 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전쟁에서 무기를 버리고 멀리 도망쳤다. 반대파의 비난에도 시민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했다.

 

필리포스 왕의 암살소식을 초기에 접한 데모스테네스는 웅변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여러 도시국가는 용기를 되찾고 다시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필리포스에 이은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되었고, 대군을 이끌고 직접 세계 정복의 길에 올랐다.

 

이때 아테네의 웅변가 열명을 인질로 보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요구했고,

이 중에 낀 데모스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두려워하고 자리를 내놓고 돌아왔다. 라이벌인 데마데스가 협상을 해서 나라는 안정이 되자, 사람들은 데모스테네스를 멸시했다.

 

 

데모스테네스 33살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병사하고, 그는 다시 그리스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설했다. 아테네인들은 그를 용서했지만, 이후 안티파테르의 마케도니아 군이 쳐들어왔고,  ㄷ데마데스의 제안에 따라 데모스테네스 일당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

 

알렉산드로스

bc356-bc323

 

그리스반도 북동쪽에 마케도니아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이를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든 이는 필리포스 왕이다.

 

그와 올림피아스 왕비 사이에서 나은 왕자가 바로 알렉산드로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쾌락이나 재물을 탐하지 않고, 용기와 명예만을 추구했다.

 

성질이 더러운 명마 보케팔루스를 여러 장군들이 컨트롤하지 못한 상황에서 왕자는 길들였다.

 

그의 스승은 필로터스 장군과 레이니다스 박사였다.

 

그는 이에 양이차지 않고 있다가, 왕과 왕비의 제안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도덕 정치, 지리, 역사, 천문, 과학, 예술을 배웠고, 왕으로서의 덕목을 익혀 나갔다.

 

그는 호머의 시집인 <일리아드> 와 <오디세이>를 좋아해서 단검과 함께 베개 밑에 두고 잤고, 전쟁때에도 들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간 왕자를 가르치고 마케도니아를 떠났다.

 

그 무렵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스스로 나라의 정치를 맡아서 할 만큼 성장했고, 18살이 되던해 데살리아의 반란을 진압했다.

데살리아가 화친의 뜻을 전할 때, 알렉산드로스는 처음 참가한 전쟁이 싱겁게 끝나 허무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아테네는 두 패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이소크라테스 파로 도시 국가 전체가 연합해서 페르시아를 정복하자 였고, 다른 하나는 마케도니아를 쳐서 힘을 기르자는 데모스테네스 파였다.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를 결집하고 인근의 테베까지 연합하였다.

 

이소크라테스는 이 연합에 탄식했고, 마케도니아는 이런 첩보를 입수하고, 알렉산드로스는 선봉장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스 중심 평야인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만났다.

 

수세에 몰리는 척 뒤로 빠지다가 단번에 몰아쳐 섬멸하자는 작전에 선공했다.

 

그리스를 통일한 후, 마케도니아는 페르시아 종복이라는 큰 꿈을 꾸게 된다.

 

그리스의 도시ㄱ국가들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코린트에 모여 '코린트 동맹'을 맺었다.

 

이후 사람들은 농담처럼 '알렉산드로 왕 필리포스 장군'이라고 말했ㄲ다.

 

여러번 결혼한 필리포스 왕 덕택에 알렉산드로스와 불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올림피아스를 버리고 클레오파트라(마케도니아의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ㅇ알렉산드로스 나이 19살때 결혼한다.(에우리디케는 왕비가 되고난 후에 받은 이름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큰아버지인 아탈루스는 후궁인 조카으 ㅣ위치를 이용해 갖은 모략을 일삼았다.

 

필리포스 왕은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되어 스무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임기 초기에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해방을 꿈꾸며 들고 일어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코린트에 다시 모일 것을 명령하였고, 총사령관으로 알렉산드로스를 추대했다.

 

원정을 가기 전에 알렉산드로스는 왕실 재산을 거의 다 나누어 주었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 그라니코스 강기슭에 다다랐다.

보케팔루스를 타고 알렉산드로스는 선봉에 뛰어들었다.

 

페르시아의 두 장군 스피트리다테스와 로이사케스가 덤벼들었다.

'검은 장군'클레이토스까지 합세해서 페르시아의 두 장군은 전사했다.

 

이 두 장군이 전사하쟈 페르시아 군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첫 전투에 승리하고, 곧 시리아로 향해 단숨에 삼켜 버렸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도시와 소아시아의 여러 왕들이 항복했다.

 

소아시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시아라고 불렸던 지방이다.

현재 튀르키예 영토에 속하는 반도이다.

Asia Minor라고 해서 과거에 아시아를 지창하는 말이었고,  소아시아는 현재의 튀르키예 영토 중 토로스 산맥과 폰투스 산맥 서쪽의 반도, 그중에서도 에게 해와 인접한 지역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아시아의 의미가 점점 넓어져서 유라시아에서 유럽만 뺀 나머지 지역을 다 지칭하는 말로 바뀌어 버렸다.

 

세계사 교과서 등에서는 소아시아(小ASIA - Μίκρα ασία)라고 나오는 반도 지역이다. 과거에는 아나톨리아 전체를 아시아라고 불렀으나, 로마 제국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지역에 아시아 속주가 설치되면서 아나톨리아와 아시아가 구분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아나톨리아'의 어원은 그리스어 단어 Ἀνατολή(아나톨리)에서 비롯되었다. '아나톨리'는 그리스어로 '떠오르다'는 뜻의 Ἀνατέλλω(아나텔로)에서 유래했으며 해가 떠오르는 방향, 즉 '동쪽'을 가리킨다. 그리스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의미. 역시 떠오르다는 뜻의 라틴어 'Levare'에서 유래한 레반트나 '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의 경우와도 일맥상통한다. 북쪽에는 흑해, 서쪽에는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 남쪽에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

 

 

킬리키아에 진격한 알렉산드로스는 군사행동을 중지했다.

 

다리우스 왕은 60만 페르시아 대군을 거느리고 킬리키아로 쳐들어왔는데, 알렉산드로스는 꼼짝하지 않았다.

사실 이 때 그는 심한 열병을 걸려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필리포스의 약을 먹고 알렉산드로스는 무서운 병을 이겨냈다.

건강을 찾은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60만 대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승기를 얻었고 맹렬한 추격전을 펼쳐 다리우스 대신 다리우스의 어머니, 왕비, 두 공주를 포로로 잡았다.

 

포로생활을 하던 다리우스 왕의 왕비가 병으로 죽자 다리우스는 복수를 결심했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진격하고 왕성 바빌론을 함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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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한 곳이 바빌론 유적지이다.

 

이때 다리우스 왕은 부하에 의해 창에 찔려 숨지게 되고, 레스시아는 나라를 세운 지 370년 만인 bc330년 멸망한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유럽 아시아 문화는 융합하여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게 된다.

 

인도 정복을 위해 이후 진군했는데, 일부만을 정복하고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오나 이미 열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다리우스 왕의 딸과 결혼하고 새 제국의 수도로 정한 바빌론으로 가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33세에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친구이자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사후 초대 파라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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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우스와 한니발

bc270~203 / bc247~183

 

 

고대 고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어릴 때 순해서 순한양 '오비쿨라'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순했지만 그의 정신은 사자의 기백이 숨쉬고 있었다.

 

웅변연습과 함께 신체 단련도 한 그는 인기를 얻어 집정관직을 다섯 차례나 역임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를 침공하여 트레비아 강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파비우스는 전투를 벌이자는 다른 집정관 풀라미니우스의 의견을 반대하고, 로마는 동맹국들과 힘을 모아 결전의 때를 기다리자고 하였다.

플라미니우스는 군대를 충돌시켰고, 때마침 지진도 일어나 도시도 파괴되고, 전투에도 패배하게 된다.

 

이후 독재관으로 파비우스는 선출된다.

 

지연작전으로 한니발을 지치려는 작전을 전개한다.

 

목초지로 가서 풀을 먹이고 휴식을 취하려고 카시눔으로 가려전 한니발의 군대는 안내자들의 잘못으로 험악한 산악지대인 카실리눔으로 가게 된다.

 

한니발의 군대는 800명 전사하고 포위되었다.

 

한니발은 소에 불을 붙여 포위망을 뚫었고, 고지를 점령하게 된다.

 

이후 파비우스의 재삼만 빼고, 다른 이의 재산들에 화재를 내어, 파비우스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포로 교환에 1대1교환 이후 남은 포로는 돈으로 돌려보내기로하는데 로마가 낼 돈이 많아지자

파비우스에게 비난이 화살이 돌아가는데, 파비우스는 자기 재산을 팔아 모면한다.

 

파비우스가 독재관직에서 물러난 후 로마는 두 집정관 바로와 파울루스가 하루씩 번갈아 군대를 지휘했다.

 

이후 로마군은 전투에 대패한다.

로마 다음가는 카푸아도 순순히 지배권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로마시민들은 들고 일어나서 파비우스를 칭송했다.

 

로마인들은 다시 용기를 내서 파비우스와 마르켈루스 장군을 출ㄷ정시켰다.

 

로마의 방패 파비우스, 로마의 칼, 마르켈루스

 

이 두사람의 침착성과 용맹이 조화를 이루어 한니발에게서 로마를 구해냈다.

 

이후 로마에 스키피오라는 젊고 지혜로운 장수가 한니발의 조국인 카르타고를 배를 타고가 공격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ㅇ이에 카르타고는 한니발을 불러들였다. 한니발이 배를 타고 로마를 떠나자 로마인들은 기뻐했고, 파비우스는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병사한다.

 

힘이 빠진 카르타고는 스키피오와 전투하였고, 로마는 카르타고가 다스리던 스페인과 알프스 남쪽을 정복했지만, 카르타고 전부를 함락하지는 못했다.

 

이때 로마의 사신은 한니발을 넘겨주지 않으면 카르타고를 짓밟는 다고 전했고, 한니발은 아무도 모르게 시리아로 망명한다. 그러나 시리아 관리는 추방시켰다.

여러 나라를 전전해서 로마를 쳐부수려고 했으나, 늙은 영웅의 말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연히 스키피오를 만난 한니발은 알렉산드로대왕, 에피루스의 피루스왕, 한니발 장군이 가장 용맹하다는 대화를 하게 된다.

 

한니발이 독약으로 자살하던 해에 로마의 대장군 스키피오도 갑자기 병사하게 된다.

 

이게 2차 포에니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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